백수의 봄엔 특별함이 있다.
아랫목이 있던 시절
새벽을 밀어내느라 분주했던 엄마는
빈그릇 달그락거리는 밥상을 방 한 켠으로 밀어놓고
다디단 아침 잠에 빠져들곤 했다
그릇에 붙은 밥알이 다 말라가도록
쩔쩔 끓는 아랫목의 열기는 곤한 엄마의 등을 지져주었고
방안엔 때 이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게 했다
한 마리 순한 코끼리가 되어
문살을 비집고 들어온 아침 햇살을 덮고 누워 잠든 모습은
게으름이 아닌 그대로의 평화여서 어린 내 가슴은 흐믓했다
허브향 아로마테라피보다 더 효과있던 그 아침 풍경이
내가 본 엄마의 유일한 게으름이자 휴식이었다
새벽 빛에 떠밀려 겨우 일어나는 나는
부산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모두
콩알 튀듯 흩어진 후 아직 덜 털린 잠을 위해 소파에 눕는다
몸 지질 따끈한 아랫목은 없지만
예전처럼 동녘의 햇살은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따스한 햇살에 손 내밀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일이어서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기 일쑤인데
사는 게 전투인 밀레니엄 시대에
저 밑바닥 어딘가를 콕콕 찌르는 통증이
무차별로 찾아오기도 해서
뜨끔거릴 때마다
손톱 밑에 거스러미가 올라왔다
백수의 계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폭으로 간다
팽팽한 긴장이나 가슴 뛸 일 없는 달력엔
사계의 변화만이 유일한 듯
산 너머 희끗거리는 징후를 눈여겨본다
겨우내 방 안에 들인
따사로운 봄날처럼 평화로왔던,
밥상을 머리맡으로 물리고 쌕쌕 꿀잠에 빠진 엄마의
그 게으르고 안온한 풍경이
전투에 나서야만 밥 한술 뜰 수 있는 작금,
뽀얀 분가루 날리며 치맛자락 붙잡고 막 들어서는 아씨처럼 대문간에 발 들이는 봄날 서정으로
내 굳은 무정을 깨우고 있다
2016년 어느 봄날에
작가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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