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분명한 것은 법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힘없고 약한 사람보다는 세상에서 잘살고 힘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24세에 야간대학을 다니며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우주시험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2호 실험보조직으로 7개월정도 일한적이 있다. 당시 나의 주된 업무는 연구보조였으며, 치공구관리와 캐드로 도면작업을 주로 했다. 문제는 치공구 관리였다. 인공위성이 먼지나 작은 이물질 하나 때문에 실패할수도 있다며, tce유기용제로 일주일에 두번씩 치공구와 볼트 너트, 각종공구류의 세척작업을 나에게 지시했다.
유기용제 보후구 지급도 없이 달랑 목장갑과 천마스크가 다였다. TCE초음파 세척액에 대한 위험성을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농담처럼 독한 약품이라고만 했다. 나는 밀폐된 장소에서 일주일에 2번씩, 오전오후 종일 세척을 할 때도 있었고, 오후시간에만 세척작업을 한적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 이상을 tce유기용제에 노출되었다. 10~20킬로의 무거운 치공구를 손으로 들어서 세탁기 같은 통에 몸을 굽혀 넣다보니 세척액이 온몸에 튀어서 상의가 완전 세척액으로 젖은채로 일을 했다.
초음파 세척작업을 시작하고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주 눈이 붓고 심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소변이 붉게 나왔고, 현기증이 자주 느껴졌다. 불과 몇달만에 체중이 10킬로 이상 빠졌고 구토증세가 수시로 나타났다.
그 때 병원에 갔어야 했지만, 젊었을 때라서 그랬는지 참았다. 체감되는 몸의 이상이 참을 수 없는 아픔이 아니라, 증세와 피로감이었기에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평생 병원이라는 곳을 가본적도 없었고 그런 증세가 큰병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좀 쉬었더니 증세들이 사라지는듯 했다. 가끔 한번씩 눈이 붓고 소변색이 붉게 나왔지만 심하지 않았고, 금새 괜찮아져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1년쯤 지난 후에 정식 취업을 했다. 그런데 입사 건강검진에서 요단백이 검출 되었다. 그 뒤로 빠르게 악화되는 것이 느껴졌고, 1년 후에 만성사구체신염 및 신부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신부전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신부전의 원인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tce유기용제가 원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산재처리 관련해서 몇차례 상담 전화를 했다. 그때 노동부에서 준 답변은 신부전으로 산재처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충격과 두려움에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졌다. 나라를 상대로 손해배상 요구를 할 자신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혈액투석을 했고, 신장이식도 했다. 이식 후 어느정도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지만 잃어버린 젊은 시절과 고통속에서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억울했다.
20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tce유기용제에 대한 논문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강한 신장 독성을 가지고 있고, 산업재해 관련 법에도 tce에 의한 신부전 발병에 대한 글도 있었다. 또한 유기용제 취급 후 신부전 발병을 한 사람들이 산재처리가 된 사례도 보았다. 늦었지만 법의 도움을 받아보고 싶었고, 무료법률상담과 국민 신문고를 통해 상담을 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산재처리가 되려면 산업재해 발생 후 3년이내 보상을 받아야만 된다고 한다. 민사소송을 해도 소멸시효가 10년이라서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억울하지만 그렇게 살다 죽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625전쟁 참전용사도 70년이 지났지만 보상을 해주고, 나라를 위해 일하다 다치거나 피해가 있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실험에 참여했다가 유기용제 세척액 취급으로 평생을 신부전환자로 괴롭게 살았고, 살고있고, 살것인데 그 모든 피해는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금전적인 보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시 함께 일했고 나에게 작업을 지시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사람들에게 사과라도 받고 싶었고, 내가 그일을 하다 신부전이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이라도 받고 싶었다.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당시 함께 근무했던 분께 메일을 써서, 그곳에서 내가 유기용재를 취급했던 기간과 시간등에 대한 자료와 그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들은 나에 대한 기억도 매우 희미했고, 초음파 세척에 대해 기억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위로라도 받고 싶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때 세척자료들이 남아있지 않을리가 없을 것이다. 겨우 내가 그곳에서 유기용제를 취급했다는 사실만 인정을 받았다. 당시 위험성을 잘 알면서 나에게 유기용제 취급을 지시했던 연구원을 생각하면 같이 죽자고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나는 그일로 인해 지금도 괴로움 속에 있는데, 법은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말고 모두 혼자 당하라고 한다.
과거에는 그 원인을 알지 못해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해도, 이제라도 그 원인을 알았고 피해가 지금도 진행중이라면 기간과 상관없이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한공우주연구원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2호는 내 인생 속에서 최악의 인연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나에게 사과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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